티스토리 뷰
목차
솔직히 저는 저탄고지가 이렇게 몸을 망가뜨릴 줄 몰랐습니다. 두 달 만에 20킬로그램을 감량했을 때만 해도 이게 정답이라고 확신했으니까요. 그런데 8~9년이 지난 지금, 그때 제 선택을 꽤 복잡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살은 빠졌지만 쓸개는 평생 추적관찰 신세가 됐고, 헬스장에서 치는 중량은 저탄고지 할 때보다 지금이 30% 이상 더 나갑니다.
저탄고지 유행과 제가 빠져든 이유
8~9년 전 저탄고지가 유행처럼 번질 때, 저도 그 흐름에 올라탔습니다. 유튜브에서 키토제닉 관련 채널들이 쏟아졌고, 소고기와 버터만 먹어도 살이 빠지고 두뇌가 맑아진다는 영상들이 알고리즘을 타고 계속 뜨더군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 배경에는 나름의 맥락이 있었습니다.
1980~2000년대 식품 업계가 저지방 고탄수 가공식품을 건강식으로 마케팅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비만과 대사증후군에 시달리게 된 것이 그 출발점입니다. 탄수화물 과잉 섭취로 생긴 병들에 지친 사람들이 정반대 방향으로 달려간 것이 저탄고지 열풍이었던 셈입니다. 그리고 그 반작용은 실제로 효과가 있었습니다. 초반에는요.
케토제닉(Ketogenic) 식단이란 탄수화물 섭취를 극도로 줄여 신체가 포도당 대신 케톤체(Ketone body)를 에너지원으로 쓰도록 유도하는 식이요법을 말합니다. 쉽게 말해 탄수화물 연료통을 비우고 지방 연료로 엔진을 돌리는 방식입니다. 초반에 체중이 급격히 빠지는 이유 중 하나는 간에 저장된 글리코겐(Glycogen)이 소진되면서 함께 빠져나가는 수분 때문입니다. 글리코겐이란 간과 근육에 저장되는 포도당의 저장 형태로, 1g당 약 3~4g의 수분을 붙들고 있습니다.
제가 직접 겪어봤는데, 브레인포그가 사라지고 정신이 맑아지는 느낌은 확실히 실재했습니다. 체지방도 눈에 띄게 빠졌고요. 그런데 동시에 탈모가 시작됐고, 원인을 알 수 없는 심장 두근거림이 반복됐습니다. 저는 그때 그 증상들을 그냥 무시했습니다. 살이 이렇게 잘 빠지는데 설마 문제가 있겠냐는 확증편향이 작동했던 거죠.
일반적으로 알려진 효과와 실제 데이터의 차이
저탄고지가 건강에 좋다는 주장은 상당 부분 사실입니다. 미국 당뇨병학회(ADA)는 실제로 탄수화물을 줄이는 식이요법이 혈당 조절에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2025년 지침에도 명시하고 있습니다(출처: 미국 당뇨병학회). 지방간 개선, 혈압 강하, 체중 감량 효과도 단기 연구들에서는 인상적인 수치로 나옵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저탄고지가 최고의 식단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장기 데이터를 들여다보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저탄고지 식단의 효과를 시간대별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단기(6개월 이내): 체중 감량, 혈당 개선, 지방간 감소, 혈압 강하 뚜렷
- 중기(6개월~1년): 정체기 도래, 다른 식단과 체중 감량 차이 수렴
- 장기(1년 이상): 동물성 저탄고지의 경우 사망률·심혈관 위험도 증가 연구 다수
아포비(ApoB, 아포지단백 B)는 심혈관 위험을 예측하는 가장 신뢰도 높은 지표 중 하나입니다. 아포비란 LDL을 비롯한 나쁜 콜레스테롤 입자 수를 총체적으로 반영하는 단백질로, 개별 콜레스테롤 수치보다 심혈관 사건 예측력이 높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케톤식을 하면 LDL 콜레스테롤 수치가 오르는 것은 대부분 인정하는데, 문제는 아포비도 함께 오른다는 점입니다. 영국 바이오뱅크(UK Biobank) 연구에서 혈액검사로 케톤이 확인된 305명을 11년간 추적한 결과, 일반식을 한 대조군 대비 심혈관 질환 발생률이 2.18배 높았습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저탄고지를 했을 때 몸이 좋아진다는 느낌 자체는 거짓이 아닙니다. 실제로 수치들도 단기적으로 개선됩니다. 그런데 그게 평생 지속되는 상태냐는 완전히 별개의 문제입니다. 저도 반년은 유지했지만 그 이후로는 유지가 거의 불가능했고, 결국 담낭용종이라는 물리적 증거를 몸에 남겼습니다.
HOMA-IR(인슐린 저항성 지수)이 케토제닉 식단으로 23.6% 개선되고 공복 인슐린이 30% 감소한다는 연구 결과는 인상적입니다. HOMA-IR이란 공복 인슐린과 공복 혈당을 이용해 인슐린 저항성을 수치로 표현한 지표로, 대사증후군과 당뇨 위험을 평가하는 데 쓰입니다. 당뇨 환자에게는 진짜 효과적인 도구가 맞습니다. 다만 ADA 2025년 지침이 말하는 저탄고지의 기준 식품군을 보면 닭고기, 생선, 계란, 올리브오일 위주이지 소고기와 버터가 아닙니다. 적색육과 버터는 오히려 제한하라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지중해식단으로의 전환이 현실적인 이유
동물성 저탄고지와 식물성 저탄고지를 17년간, 9만 명을 대상으로 추적한 일본 연구에서 동물성 저탄고지 그룹은 대장암, 직장암, 폐암 발생률이 증가했지만 식물성 저탄고지 그룹은 총 사망률, 심혈관 사망률, 암 사망률이 모두 감소했습니다. 이 결과는 "저탄고지를 하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어떤 저탄고지를 하느냐"가 핵심임을 보여줍니다.
지중해식단(Mediterranean Diet)이란 올리브오일, 생선, 채소, 견과류, 콩류를 중심으로 하되 적색육과 가공식품을 최소화하는 식이 패턴입니다. 18개월 추적 연구에서 간 지방이 20% 감소했고, 여기에 식이섬유가 풍부한 만카이, 호두, 녹차를 더한 그린 지중해식단은 같은 기간 간 지방이 39%나 감소했습니다(출처: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
솔직히 저는 과거 저탄고지를 선동했던 유튜버들의 근황을 최근 찾아봤습니다. 채널을 삭제하거나 잠수를 탄 경우가 여럿이더군요. 수익 문제일 수도 있겠지만, 제 추측으로는 식단의 한계를 몸으로 느끼고 접은 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지금 또 같은 흐름이 되풀이되는 것을 보면서 "이건 10년 전에 제가 겪은 그 사이클 아닌가"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한국 식문화에서 현실적으로 생각해보면, 밥상 차리는 방식, 회식 문화, 편의점 음식 등 어디를 봐도 고탄수 함정이 깔려 있습니다. 평상시 식사를 최대한 저탄수 방향으로 조정해야 그나마 탄수화물 60% 이상인 한국 평균 식단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게 현실입니다. 그 방향을 소고기와 버터로 채우느냐, 생선과 올리브오일로 채우느냐는 장기 데이터가 분명하게 갈라놓고 있습니다.
저탄고지로 단기적으로 건강을 되찾은 경험은 진짜입니다. 그 선택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제 몸으로 직접 찍어먹어본 결론은, 괜히 의사들이 균형 잡힌 식단을 권하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지금 저탄고지 중이라면, 동물성을 식물성으로 바꾸고 식이섬유를 더하는 것만으로도 장기 리스크를 크게 줄일 수 있습니다. 식단은 정체성이 아니라 도구입니다. 용도가 끝나면 바꾸면 됩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의학적 조언이 아닙니다. 건강 상태 변화가 있을 경우 반드시 의료 전문가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
